(♬: 제목 모름)
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던 간에 내게 오는 좋지 못한 것들에 대해선 한숨을 내뱉고 다닌 나인데, 기술은 진보하면서 어째 내 손 닿는 세상은 점점 퇴보해간다. 행복도를 하루로 놓고 보자면 내게 보이는 세상은 어둠이 잠기기 전 빨간 황혼.
걱정인지 먼지인지 세상이 가득해 하루하루 내쉬는 숨이 갑갑할 정도인데 집 주변 멀지 않은 곳에 귀마저 아프게 하는 노인이 있다.
길거리 담벼락 밑에 북을 펼쳐놓고 고고하게 앉아서 북 사시오 하고 매일같이 북을 두드리는데, 빛바랜 회색 두루마리에 갓을 쓴 모습이 어디 지리산 산속 깊은 데서 온 신선처럼 이 세상 사람 같지는 않아 보인다.
매일같이 그 자리에 앉아서는 아침이고 저녁이고 시도 때도 없이 북을 울려대는 걸 보니 꽤 오랫동안 북을 팔아본 것 같다. 장단은 일관되게 덩기덕쿵더러러. 마을 분위기는 초상집인데 박자는 굿거리장단이니 이거 뭐 울어야 하나 박자에 맞춰 춤춰야 하나.
매일같이 북치고 먼지 쓰고 하면 북도 좀 더러워질 법한데 하나라도 팔아보겠다고 매일같이 때 빼고 광내고 갖은 정성을 다 들여서 다 낡은 싸구려 북인데도 아주 새것같이 빛이 날 정도이다. 정작 노인은 두루마리만 갈아입고 사는지 온갖 더러운 냄새로 가득해서 다가가기도 부담스럽지만 말이지.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 짧은 옷차림을 지적하며 시비 거는 걸 보면 자기 구린내는 잘 참아도 남들 꼴불견은 못 참는 모양이다.
항상 혼자는 아니어서 해 질 녘만 되면 어디서 거지 같은 패거리들이 사물놀이 악기를 들고 나타나서 타령하며 합동연주를 하는 데 아주 가관이다. 제 딴에는 자기 악기를 열심히 때려대지만 박자고 뭐고 하나도 안 맞아 소음에 불과한 걸 뭐가 그리 좋다고 치고 나서 서로 뿌듯해하는지 모르겠다.
세상 바뀐 지가 언젠데 누가 북을 산다고 저렇게 열과 성을 다해서 파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내 집 옆에서 매일같이 북을 친다는 사실이다. 나도 내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소음으로 방해를 받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.
참다못해 다른 데로 가서 팔 수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우리 민족 가락이 얼마나 좋은데 외세 음악 듣고 무시하냐고 대뜸 화를 내면서 요지부동이었다. 밤이고 낮이고 북소리에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노인이 무슨 말을 해도 그 입에서 북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.
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북이 안 팔려서 다른 동네로 쫓겨나던지, 불법 노점상이라고 경찰한테 잡혀가든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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